AI를 더 똑똑하게 사용하는 방법 (#1)
- 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 지난 'AI는 왜 나를 더 바쁘게 만들까' 주제가 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더 나눠보면 좋을 듯 합니다. 사실 지난번 수요레터가 AI가 어떻게 우리를 더 바쁘게 만들고 있는가에 대한 주제였다면, 오늘은 AI는 나의 생각과 능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란 이야기로 확장해 보려 합니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AI,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요?
- 그럼 시작해 볼까요?
AI는 우리의 능력을 퇴보시킨다
- 레날 제스노(Rénald Gesnot)가 2025년에 발표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Human Thought)>이라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적 기능을 AI에 의존(외주화)하면서 사고의 깊이가 얕아지고, 독자적인 지적 자율성과 해결 능력이 저하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에서 소개한 병원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병원에 종양 발견을 위한 AI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의사들의 종양 검출 능력을 측정해 봤더니, 기존보다 6% 정도 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종양 발견의 정확도는 높아졌지만, 인간 의사의 능력은 퇴보한 셈입니다.
- 비단 이런 퇴보는 AI를 활용할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방향과 길을 찾아내는 우리의 감각은 어떤가요? 우리의 길찾기 능력이 처음부터 이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길치가 된 이유는 내비게이션 때문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운전과 길찾기는 너무도 편해졌지만,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모르는 장소를 찾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해질 정도로 우리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도구에 종속되고 말았습니다. AI를 사용하는 우리의 미래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출처 : Envato
자동화의 역설
- 이런 현상은 '자동화의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리산느 베인브리지는 1983년 논문 '자동화의 역설'에서 자동화가 잘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능력이 감소하는 역설을 논증한 바 있는데요.
- 항공 운항에 관한 자동화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항공 운항에서 자동 조종이 보편화되면서 조종사들은 수동 조종 기회를 점차 잃게 되었습니다. 직접 조종할 기회가 줄어들자 조종사들의 조종 능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게 되었고, 더욱 자동화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죠. 인간의 조종 능력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자동화에 의지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혼란스러운 자동화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Envato
돌아갈 수는 없다
- 그렇다고 기술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죠. 방향이 잡힌 기술의 흐름을 돌이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스마트폰이 문제가 많다고 예전의 피처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나요? 내비게이션이 없는 자동차, 자동 조종이 없는 비행기, 사실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가지 힌트를 아래 사례들에서 발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알파고 쇼크 10년 후
- 2016년 알파고가 인간 기사 이세돌을 이긴 이후 바둑에 몸담고 있던 기사들은 이제 더 이상 바둑을 둔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기사들은 AI를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학습의 도구로 AI를 활용한 거지요. 특히나 여성 기사들의 실력 향상이 두드러졌습니다. 과거 훈련 기회와 실전 대국 수, 지도 사범의 집중도에서 불리했던 이들이 카타고 같은 AI 복기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수십 판 이상 복기하면서 직관력과 포석 감각, 판단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 그런 결과일까요? 알파고의 이세돌 승리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인간은 AI를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신진서 9단이 최근 바둑 AI 카타고와의 2점 접바둑 대결에서 첫 판을 내주고도 두 판을 내리 이겨 승리했습니다. 인간 기사의 바둑 능력이 AI를 통해서 향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기원
AI에게 다 위임하라
- 2026년 국제교육공학저널에 실린 왕과 장(Wang & Zhang)의 논문은 AI를 통한 학습에 관한 좋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연구진은 AI를 통한 학습 위임 과정이 학습을 해칠 것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개 대륙의 학생 912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AI를 지적 협력자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학생일수록 학습의 깊이가 오히려 더 깊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이 결과에서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AI에게 일을 맡기려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아예 확실히 위임을 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 학생들의 AI 사용 양상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뉘었습니다. 구간1은 AI를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 부류였고, 구간2는 문장을 고치거나 확인하는 등 부분적으로 AI를 사용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간3은 적극적이고 통째로 과제를 AI에게 위임하는 부류였습니다. 사후 분석 결과, 구간1은 학습은 되지만 실행에 시간을 다 쓰느라 성찰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구간2는 인지 부담은 그대로인데 AI를 관리하는 수고만 더해져 학습 효과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구간3에 이르러서야 과제의 부담을 덜어낸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프레임 설계, 독창적 논증, 판단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강화하는 데로 이어졌습니다.
- 재미있습니다. AI에게 위임하려면 확실히 위임하고 큰 단위로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오히려 프로젝트 전체 그림에 관한 효과적인 인사이트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문장 좀 교정하고, 발표자료 좀 예쁘게 만들고, 자료를 찾고 이런 용도로만 AI를 사용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더 큰 질문과 과제를 던졌을 때 AI와 일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문입니다. AI에게 대담하게 내가 하는 일들을 위임했을 때 열리는 새로운 지식의 지평은 고무적입니다.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죠.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의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 결국 나의 핵심 역량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은 프라할라드와 해멀이 199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제시한 비즈니스 개념입니다.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고 성공하기 위해 모든 부분을 아웃소싱할 수도 있지만, 핵심 역량만은 내재화해야 하고 그것을 외주로 주는 순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껍데기만 남는다는 이론입니다. 이런 핵심 역량의 개념은 기업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겠죠. 우리 개인에게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입니다. 나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혹시 나는 지금 나의 핵심 역량을 외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의 역량을 나의 것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가? 이 논의는 기술과 시대를 넘어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AI를 활용할 때도 가장 중요한 관점이 바로 이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가 나의 핵심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라는 관점 말이죠.
AI 활용 3가지 노하우
- AI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AI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론은 늘 변화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제가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AI 사용 방법을 소개하는 건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출처 : Envato
- 첫째, 무엇을 할 것인지의 목표와 방향을 먼저 설명한다.
막연하게 AI에게 요청부터 하기보다는 이 요청이 왜 필요하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여기서 특히나 목적을 설명하는 게 꼭 필요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 단순한 지시에 앞서 방향을 지정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단방향의 지시는 딱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AI는 고지식한 답변을 내놓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실 AI와의 협업의 효율성을 추구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이 과정은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의 목적을 잊어버릴 때가 많죠.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방향을 놓치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 둘째, 더 나은 대안이 있어?
작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지시 사항이 없으면 AI는 산으로 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잘 지시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의 모든 가이드라인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명령 속에는 나도 모르게 오류나 상반된 요소가 포함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죠. 그래서 이런 경우, AI에게 과제 실행의 오류나 개선점을 발견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런 열린 협업의 프로세스가 오류를 줄이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게 만듭니다. AI와의 대화 과정 마무리엔 꼭 이렇게 지시하세요.
"그래도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제안해줘"
라고 말이죠.
- 셋째, AI 네이티브를 지향하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AI에게 위임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활용법도 잘 모르겠고, 솔직히 처음에는 AI가 내놓는 결과도 시원찮습니다. 모델에 따라 답변도 천차만별이고요. 하지만 점차 익숙하게 쓰다 보면 어떤 기점이 보이게 됩니다. 모든 일을 AI 네이티브(AI Native)적 사고로 접근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시점 말이죠. 앞서 얘기했던 왕과 장 논문의 결과와도 일치된 의견입니다. 맡길 거면 확실히 맡겨야 한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AI와 같이 풀어나갈 것인지를 먼저 고려하고 추진하는 것. 그것이 AI 네이티브의 시작입니다.
- 오늘 수요레터는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얘기들이 계속 생각나네요. 앞으로도 수요레터를 통해 어떻게 AI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저의 관점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댓글로 편하게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촌장 드림